over and less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알맞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무언가 고장이 났는데 제때 잘 발견하여 고치고, 좀 더 미리 알아 고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만, 심각한 문제 이전에 발견하여 조치가 되면 적절할 것입니다. 무언가 문제는 발견했는데 대처 방법과 부속품 등이 없고 부족해도 문제입니다.
비슷하니 되었다며 정확한 것이라 여기면 잘못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 영역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의 계속되는 경제 충격과 글로벌 관계, 재난, 삶, 관점 등 불균형의 곤란의 논쟁 가운데 그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고 합니다.
알맞고 좋은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 알맞게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보호되는 것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인체의 예로 지속되는 알맞은 순환을 통해 온 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러한데 가족과 단체와 사회와 국가와 지구 공동체는 어떠한가요.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고 합니다. 평지가 있으면 산이 있고 산을 타다 보면 언젠가는 평지에 도달합니다.
평지를 원한다고 모든 산을 깎아내어 바다를 메꿈이 참된 것인가 싶습니다.
산에만 살고 싶어 바다의 흙을 퍼내어 주변의 평지를 산으로 만들고 고도를 높이는 것이 진정한 것인가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자전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합니다. 자전을 하지 않거나 그 주기를 변화하거나 공전의 주기를 변화하면 어떻게 되는가 의문입니다. 언젠가는 실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누군가에 의해 이런 시도를 해보지 않겠는가 싶음이 없지는 않은데 알맞음이 좋지 않은가 싶습니다.
적절한 비유인가 싶습니다만, 사람의 내면을 구성하는 기관도 알맞아야 한다고 보입니다. 혈관의 굵기와 운송모습이 차이를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싶습니다.
사회와 경제는 적지 않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압니다. 삶에 의식주와 연계되지 않음이 없으며 과거로 오늘날에도 세상 가운데 이와 무관한 모습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보다는 좀 더 잘 아는 것이 유효할 것입니다.
몇 지표를 보겠습니다.
PER
Shiller PER
PSR
PBR
2022년 11월 중반 미국 증시 관련 자료 multpl.com
위의 일반적인 잣대를 통해 경제 전반을 가늠하기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음에도 나름 신뢰할만한 지표로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자료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이시는지 좀 의문입니다. 미국의 모습으로 다른 곳은 다른가 싶습니다.
순환은 삶에 필수라고 하는데 세상 가운데 분쟁은 어쩌면 이런 경제 지표를 통해서도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 가운데 개인과 사회의 자발적 제어가 일어나지 못하고 힘드니 결국 외적인 충격을 통해서라도 제어가 일어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느 무렵엔가 병원과 친해져 있는 모습을 자각하게 된다면 그간의 잘못에 대해 깨닳게 됨과 같다고 보입니다. 물론 함께 사는 세상에 비판만이 합당한 것은 아님도 없지 않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알맞음을 넘어 탐욕과 타락의 늪에서 벗지 못하면 결국 질병, 분쟁 등 여러 곤란이 발생하는 이치와 같은 선상으로 보입니다. 불행이면서도 지구 공동체의 자정 장치가 고장 나지 않고 나름 작동하고 있다는 긍정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즈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크기가 다른 바퀴를 지닌 자동차는 같은 속도여도 결국 주행 거리가 차이가 납니다. 소유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소득 상승률과 집값 상승률이 중장기적으로 차이가 있음에 결국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이 더 높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집을 구매할 여력은 점차 줄게 되고 더 많이 일해야 비슷한 집을 구매하게 되는 오늘날과 같다고 보입니다. 부익부 중익중 빈익빈 이 당연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다만 한 차에 다른 사이즈의 바퀴가 장착 되어있기에 이런 저런 출렁거림이 지속되고 있지는 않는지 의문입니다. 바퀴를 갈아 끼우고 자동차간의 다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자신에 맞는 삶을 사는 것에 좀 더 관심을 두면 어떠한가 싶음이 있습니다.
부자 동네 인근에 거주하는, 그들의 유지와 사회를 위한 저렴한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필요하므로 가난한 사람들이 주변에 거주하는 사회는 적절할 수 있음에도 전반적인 부자들의 높지 않은 나눔 의식과 타성을 넘어, 그런 구조와 가난한 삶에의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기보다는 아예 여러모로 삶의 도전과 유지가 저렴한 외곽과 지방으로 이주하는 시도를 행하지 않음의 잘못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회는 화합과 불만 반목 재조정 등의 순환을 거치면서 계속 성장 변화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실패의 경험으로 한적한 곳에 가서 도전하며 새롭게 일구는 모습과 그 보다는 어떻게 빚을 더 내서라도 기존의 익숙한 곳에 정착해 나가려는 모습의 부작용이 함께하는 가운데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가와 그 모습의 여러 모습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 달콤한 무엇 등과 같은 것으로 중독을 통해 속박과 잡아두려는 좋지 않음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늠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안하고 주는 사람도 진정한 이타심 여부를 가늠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류 역사의 여러 차례와 과거 1900년대 초의 스페인 독감이 발생한 이후에, 최근의 코로나 체험등 어느 정도 유사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이 세대와 그간의 체험의 후유증을 경험한 세대의 성장에 따른, 여러 도래할 앞날의 긍정과 함께하는 부정적 모습에도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그 모든 곤란의 결국에는 더 나은 미래와 긍정의 도래를 바래보게 됨과 함께 작금의 곤란을 너무 안일하게 보는 것에는 주의를 요합니다.
평지가 있으면 산이 있고 산을 타다 보면 언젠가는 평지에 도달합니다. 아니라구요?
물론 계속 헤매는 경우의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나아가 아예 정착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일반화에는 글쎄요 싶습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과거의 지표를 보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과거에는 수치가 낮아도 오늘날과 앞으로는 높아도 되는 시대에요 라고 여겨 지시나요. 수치라는 성과 달성을 위해 과도한 짜맞춤의 유혹에 들지는 않는가요.
순환은 불필요한 과거의 산물인 이유는 무엇 인가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던지, 삶에 불만과 불안이 부재할 수는 없을 것임에도, 이를 넘어 진정 자족함의 감흥을 더 많이 체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를 보며 나아가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나이다 … (시 119장)
…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2-5)
근래 전쟁과 기근과 재난과 재해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음과 그 분들을 향해 위로를 전해봅니다.
참된 진리인 성경 말씀과 이를 잘 안내하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Nov 2022